Jun 2, 2026

왜 하필 모압일까

유독 자주 불리는 이름

교만에 대해 메모를 작성하다 보니, 이제 묵상 중 교만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개역개정 기준 이사야서 2장, 3장, 9장, 13장, 16장, 23장, 25장, 28장에 “교만”이 등장하고, 새번역에서는 추가로 10장, 26장에도 교만이 등장한다. 궁금해져 표로 만들어 보았다.

장교만의 주체비고
2장세상(일반)개역개정/새번역 공통
3장예루살렘/유다개역개정/새번역 공통
9장사마리아/에브라임개역개정/새번역 공통
10장앗수르(앗시리아)새번역에만 등장, 개역개정에서는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으로 유사 의미
13장세상(일반)개역개정/새번역 공통
16장모압개역개정/새번역 공통
23장두로개역개정/새번역 공통
25장모압개역개정/새번역 공통
26장세상(일반)새번역에만 등장, 개역개정에서는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로 유사 의미
28장사마리아/에브라임개역개정/새번역 공통

이스라엘 전체(에브라임, 유다)와 열방 모두 교만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데, 열방 중 모압이 두 번이나 나왔다. 이미 살펴보았듯 예레미야에서도 모압의 교만이 언급되며(48장), 에돔(49장), 바벨론(50장)보다 앞에서 등장한다. 내가 성경학자가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두 선지서에서 ‘교만’에 관한 모압의 비중은 작지 않다고 보인다. 왜 하필 열방 중에서도 모압의 교만이 유독 강조되는 것일까?

예레미야서와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모압의 교만 (개역개정)

  • (예레미야 48:26)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
  • (예레미야 48:29)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 (이사야 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 (이사야 25:11) 그(모압)가 헤엄치는 자가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의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실 것이라

모압 족속의 기원은 이스라엘과 연결된다. 창세기 19장에서는 소돔과 고모라 심판 이후 롯과 두 딸의 근친상간으로 인해 모압과 암몬 족속이 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압과 이스라엘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전쟁도 자주 있었고, 신명기 23장에서 모압 사람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님까지 이어지게 되는 룻은 모압 사람이다.) 더러 모압이 이스라엘 대비 강력한 시기도 있기는 했겠지만, 성경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열세인 시기가 훨씬 많았을 것 같다. 어찌됐든 이스라엘을 다스릴 정도로 강해지지는 못했다. 앗수르나 바벨론, 애굽(이집트)처럼 당시 강대국들의 교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무역 도시로 많은 부를 누렸던 두로의 교만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모압이 언급된 도시들과 비교할 만할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교만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성경에서 강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성경에서 명확하게 답을 주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흔하지도 않겠지🤔) 하지만 궁금한데 어쩌겠는가. 내가 생각한 가설은 대충 이렇다. 모두 느낌적인 느낌이고,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1. 이스라엘의 모압에 대한 묘한 적개심이 반영되었다 :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졌지만 사이가 나쁘면 더 미워보이는 게 인지상정.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 갈라진 에돔도 강대국은 아니지만 예레미야서에서 교만이 언급되었다. 두 나라는 이스라엘이 위험할 때 뒤통수를 치거나, 그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비웃는 묘사가 많이 나온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지만 기록되는 시대와 기록하는 사람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는 반영할 수밖에 없다.
  2. 반드시 강대국이어야지만 교만한 것은 아니다 : 자고, 오만, 거만, 자랑, 분노 등 교만의 속성이 반드시 어떤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지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당장 자고만 해도 스스로 높은 위치에 있다 인식하는 건데, 자기 인식과 실제 위치가 같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애초에 교만 자체가 하나님으로 온 것들을 자기로부터 왔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3. 모압이 이스라엘에 열등감을 품었기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들 앞에서는 더 잘난 척했다 : 실제 인간관계에서 흔하게 보이는 패턴이다.

가설을 직접 적어보기 전에는 1번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 적어보니 핵심은 2번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의 교만이 많이 등장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 어떤 위치에 있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기 환경으로 인해 교만할 수 있다는 것, 정확히는 교만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이 좋으면 그런 좋은 환경을 만든 나 자신의 성취가, 환경이 나쁘면 거기서도 아득바득 살아내는 나 자신의 의지가 다른 무엇보다 크게 다가온다. 어느 쪽이든 ‘나’가 중심인 것이다. 좀 더 나아져봐야 ‘우리’ ‘사회’가 되고. (능력 있고 의지 있는) 사람이 무엇이든 만들고 이루고 쟁취해 낼 수 있다는 생각, 그게 교만의 뿌리일지도 모르겠다.